흰눈에 감춰진 세상. 숨소리마저 멈춘듯 움직임이 없습니다. 고요합니다. 길고 긴 침묵. 겨울산은 이처럼 적막합니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이따금씩 바람을 일으키지만 금세 잦아듭니다.
생명이 깃들 여지마저 없어 보이는 얼어붙은 산. 그러나 착각입니다. 겨울산은 소리없이 생명을 키워냅니다. 경이로운 세계가 겨울 산에서 펼쳐지지요.
겨울산에서 자라는 식물은 새들의 양식이 되어 자손을 퍼트리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궁금하시지요? 겨울에 크는 생명. ‘겨우살이’ 이야깁니다. 겨우살이는 바라보는 것 자체로 탄성을 자아냅니다.
나뭇잎을 떨군 나무가 긴 동면에 빠져드는 순간, 겨우살이는 싱싱한 생명력을 뽐냅니다. 녹색 잎을 나부끼며 너울너울 춤을 추지요.
참나무와 오리나무, 팽나무, 밤나무 등이 겨우살이의 ‘삶터’입니다. 겨우살이에 살을 뜯기는 나무들이야 무척 억울하겠지요.
그러나 겨우살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영역을 넓힙니다.
겨우살이 군락에서 경외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다른 생명에 붙어 자신의 삶을 일구는 겨우살이.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식물이 그렇듯 겨우살이도 약리작용이 뛰어납니다. 한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혈압과 관절염, 신경통, 당뇨병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무에 붙어 자라는 겨우살이는 새들의 둥지 같습니다. 둥글게 자라며 지름이 30cm가 넘습니다.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익는 열매는 노란색을 띠는 반투명으로 새들에게 훌륭한 먹이가 됩니다.
애주가들에게도 좋은 식물이지요. 예부터 ‘술독’을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강병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