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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의 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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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 잔디밭일까요? 텃밭일까요?
제목 우리 집 마당, 잔디밭일까요? 텃밭일까요?
작성자 강기희 (ip:)
  • 작성일 2008-08-11 14: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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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 잔디밭일까요? 텃밭일까요?
[게으른 농부의 참살이 이야기] 세상에 이렇게 게으른 농사꾼 보셨나요?
   강기희 (gihi307)
  
▲ 개망초꽃.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이 아름다우며 선이 곱다. 배 고플 땐 계란후라이로 보이기도 한다.
ⓒ 강기희

 

이틀 전(18일) 하루 동안  내린 비로 마당은 풀들의 잔치판으로 변했다. 물기를 흠뻑 빨아들인 풀들은 지난 하룻밤 사이에도 한 뼘씩은 자란 듯 키를 훌쩍 키웠다. 잔디 마당을 한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가. 어쩐 일인지 나는 시골에 온 이후로 집을 옮길 때마다 마당에 잔디부터 심었다.

 

잡초들의 잔치를 지켜보던 게으른 농부 "거참 재밌네"

 

잔디를 심을 때면 시골 사람들은 "아유, 그 땅에 먹을 것을 심으면 몇 식구는 먹고도 남겠네"라고 지청구를 늘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잔디 농사도 농사 중의 하나거든요"라며 시골 사람들과 생길 수 있는 경계를 허물어 갔다.

 

처음 지금의 집에 왔을 땐 마당조차 없었다. 전 주인은 빗물이 빠져나가는 길로 사람이 다녔으며, 활용 가능한 땅이란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곡식과 작물을 심었다. 지금의 마당은 애초 더덕 밭이었다. 그런 땅을 마당으로 만들었던 탓에 더덕 순이 여기저기에서 돋아났다.

 

잔디 심은 마당에 난 것이 어디 더덕뿐이던가. 도라지를 비롯해 달래,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나물취, 곤드레나물, 들깨, 쑥, 상추, 천궁, 당귀, 민들레, 마늘, 쪽파, 비름나물, 돌나물, 질경이, 개망초 등등. 당장 쌈이나 반찬 혹은 나물로 먹을 것만 해도 거명하기 숨찰 정도로 많이 생겨났다.

 

더덕과 도라지, 천궁, 당귀, 질경이, 민들레 등은 반찬류이기 보다 보약이다. 고들빼기와 씀바귀는 입맛이 없을 때 밥맛을 돋우는데 있어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렇듯 마당에 있는 것들을 야채로 또는 조리를 해 밥상 위에 올리면 그것들은 반찬이 아니라 '밥상 위의 보약'이 되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함께 바랭이나 콩풀, 클로버 등 먹을 수 없는 잡초까지 더하면 잔디 농사는 애초부터 허사가 된 셈이다. 돈이나 적게 들였던가. 없는 돈 긁어모아 잔디 값으로 30만원이나 들였지만 잔디 마당은 2년 만에 텃밭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 상추. 잔디를 밀어내고 마당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작년에도 지켜만 보다가 하나도 먹지 못했다.
ⓒ 강기희
  
▲ 명아주. 능쟁이라고도 하며 나물로 먹는다. 커지면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기도 한다.
ⓒ 강기희

 

잡초도 생명을 품었으니 함부로 할 수 없음이야

 

아이들과 함께 온 벗들을 위해 축구공까지 마련했지만 공을 차기는커녕 지금의 상황으로선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무심코 내딛은 발에 민들레꽃이 밟혔다. 민들레꽃을 피하다보면 도라지 싹이 부러지고 더덕 순이 잘려나갔다. 그런 이유로 마당을 걸을 땐 지뢰밭을 지나가듯 조심스럽게 발을 떼야만 했다.

 

잔디만 살리고 여타 식물을 다 죽이는 제초제가 있다지만 그런 일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시골집 마당이 부잣집 정원도 아닌 데다 농약과 제초제를 수시로 써야하는 골프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잡초도 하나의 생명을 품은 존재라는 생각에 지켜보기만 했다. 초봄에 나는 잡초는 예쁘기도 하여 그것들을 오히려 귀히 여기기까지 했다. 물론 광우병으로 인한 촛불정국으로 지난 5월부터는 틈만 나면 서울로 줄달음질을 쳤으니 마당과 밭에 어떤 풀이 나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주변이 온통 풀밭이 되자 누군가는 마당에 있는 풀과 옥수수와 호박, 곰취 등을 심은 천여 평의 밭을 덮고 있는 풀을 몽땅 베어 백초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100가지 풀로 만드는 백초. 독초가 흔할 리는 없지만 그 또한 약이니 세상엔 못 먹을 풀이 없다는 것이다. 명약 중에 포함된다는 백초 만들기 제안에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 한들 그 일을 누가 한단 말인가. 나는 이미 풀에게 점령당한 밭에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밭에 난 풀을 베어 백초를 만든다는 것은 항복한 내가 반기를 드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그 또한 행하긴 어려웠다.

 

  
▲ 민들레 홀씨. 이슬 머금은 미들레 홀씨가 비상을 준비한다.
ⓒ 강기희
  
▲ 돌나물.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서 자태를 뽐낸다.
ⓒ 강기희

 

지친 땅을 쉬게 한다는 명목으로 더욱 게을러진 농부

 

밭에 난 풀은 이미 촛불을 들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타던 5월부터 포기했다. 이른 바 '방치농법'인 것이다. 사흘 전 집을 방문한 프로 농사꾼에게 "저 밭을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풀밭이 되어버린 밭을 보더니 한참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지금은 방법이 없네요. 그냥 뒀다가 가을쯤에 풀을 베어 빈 골에 놓으세요. 그럼 내년엔 땅심이 깊어지고 풀도 덜 날 겁니다"라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것이 웬 횡재수. 당장 풀을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닌가.

 

프로 농사꾼의 말에 나는 "그럼요, 뽑으면 또 며칠 뒤엔 다른 풀이 나던걸요"하며 현 상황에 대한 진단에 감사해 했다. 가을에 프로 농사꾼이 조언한 일을 진행 시킬 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땅이 살아나고 있는 과정이라는 말엔 나도 적극 동의 했다. 

 

유기농을 하겠다며 마지막으로 고추농사를 지었던 밭을 풀밭으로 만들어 버린 지 2년 차. 사람들은 풀씨가 자신들의 밭으로 날아갈 것을 염려해 나를 도끼눈으로 보았지만 사실 밭은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농약과 제초제 세례를 받아왔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린 흙을 살려내는 일은 지친 땅을 쉬게 하는 것밖에 없었다. 당장의 소출은 떨어지겠지만 미래를 본다면 죽은 땅은 반드시 살려내야 할 것이었다.

 

비료나 농약을 한 번도 주지 않고 땅을 쉬게 한지 2년 차. 그래서인지 작년보다도 매미 유충인 굼뱅이나 지렁이 수가 급격하게 늘어갔다. 드디어 땅이 살아났고,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 들깨. 작년에 마당에서 들깨를 털었더니 마당이 들깨 밭이 되었다.
ⓒ 강기희
  
▲ 고들빼기꽃. 고들빼기가 노란 꽃을 피우고 벌을 유혹한다.
ⓒ 강기희

 

텃밭이 된 잔디마당 "삼겹살만 있으면 됩니다!"

 

밭은 땅심을 돋우기 위해 풀을 그냥 둔다고 하지만 마당은 달랐다. 원하진 않았지만 잔디밭을 텃밭으로 만들어 버린 야채와 잡초를 두고 나는 '저 것들을 어찌해야 하나' 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잡초야 양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먹을 것들이야 무슨 죄가 있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먹는 것을 함부로 하면 벌 받는다는 옛말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잡초지만 살아있는 것을 뽑아 버릴 수 없는 탓이었다. 더구나 민들레와 고들빼기, 달래 등은 씨를 잔뜩 품고 있어 더욱 뽑을 수가 없었다.

 

텃밭이 된 마당을 잔디밭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그냥 지켜보기엔 빈 집처럼 보여 잡초를 내버려 두기 또한 어렵다. 먹을 것이 가득한 우리집 마당을 보며 누군가는 저녁 시간 삼겹살만 끊어오면 된다고 말했다. 말 되는 이야기다. 굳이 쌈을 준비하지 않아도 마당을 한 바퀴만 돌아도 행복한 저녁이 되기 때문이다.

 

장마는 시작되었고 이러한 고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당을 잔디밭으로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잡초는 뽑아 버리고 더덕과 도라지는 캐 먹으면 된다. 간단한 문제지만 실행하는 일은 어렵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참아주고 견뎌주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제초제 한 번으로 주변의 모든 풀을 죽여 버리는 요즘 세상. 잡초를 뽑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미련한 농부가 또 어디 있을까.

 

이쯤 되면 올해도 텃밭이 된 마당을 잔디밭으로 되돌리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듯싶다. 게으른 농부 아니던가. 좀 더 게을러보자. 그럼 뭔가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 민들레꽃. 잔디 마당이 민들레꽃으로 환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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