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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의 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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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에...매미는 운다
제목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에...매미는 운다
작성자 강기희 (ip:)
  • 작성일 2008-08-11 14:13:20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79
  • 평점 0점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에...매미는 운다
[동영상] 숲속에서 매미들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다
   강기희 (gihi307)
  
▲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에 매미는 웁니다.
ⓒ 강기희

 

얼마 전까지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했던 가리왕산 자락이 지금은 매미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새벽 시간 어둠이 물러나면서 울기 시작한 매미는 다시 어둠이 찾아 올 때까지 그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매미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지금 숲을 흔드는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수컷매미. 태생과 함께 벙어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암컷매미는 짧은 일생 동안 한 번도 울어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매미의 사랑은 암컷매미가 수컷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짝을 선택한다. 수컷매미가 나무가지에 붙어 울고 있고, 암컷매미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면 슬금슬금 다가가 뜨겁게 사랑을 나눈다.

 

다른 매미보다 더 아름답고 큰 소리로 울어야 암컷으로부터 선택 당하는 수컷매미의 일생은 그래서 열정적이기보다 치열하다. 치열하게 울어야만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수컷매미. 짧은 생만큼이나 그 울음소리도 비장하고도 처연하다.

 

울어야 사랑을 찾는 매미의 뜨거운 일생

 

  
▲ 매미. 이주알~이주알~ 운다.
ⓒ 강기희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수컷매미. 짧은 사랑을 마친 암컷매미는 나무에 알을 낳고 죽어간다. 매미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나고, 암컷이 낳은 알은 수년 간 애벌레와 굼뱅이로 살아간다. 매미가 되기보다 천적의 먹이가 될 확률이 더 높은 매미는 긴 세월 동안 몇 차례의 탈피 끝에 비로소 성충매미가 된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7년이나 땅 속 생활을 하는 매미. 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사랑은 달콤하면서도 순간적이다. 울어도 울어도 사랑을 찾지 못한 매미는 끝내 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자락에서 울고 있는 매미는 도심 가로수에 붙어서 울고 있는 매미 울음소리와 달리 맑고 청량하다. 자동차 경적보다 크게 울어야 하는 도심의 매미는 귓전을 따갑게 하지만 산촌의 매미는 낮잠을 몰고 오는 자장가처럼 정감 있으면서도 친근하다.

 

매미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11일 골짜기로 나섰다. 며칠 동안 이어진 일이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많지만 다들 숲 속에서 울고 있기에 직접 찾아 나서야 했다. 매미를 찾아 숲으로 들어갔지만 문제는 '뱀'. 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운 녀석이라 발걸음을 떼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발 아래로 쏠렸다.

 

한창 독이 오르고 있는 뱀은 수컷매미처럼 울지 않았음에도 스스스 다가와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하니 머리를 치켜 든 살모사나 독사를 만나면 매미고 뭐고 잴 것 없이 도망질을 놓아야 한다.

 

경계심이 많은 매미는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울음을 그치고 푸륵 날아갔다. 어쩌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매미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숲을 헤치며 카메라를 들이 대는 순간 매미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미안했다. 

 

지금 산촌을 떠들썩하게 하는 매미들은 "이주알 이주알" 그렇게 운다고 해서 '이주알매미'와' "찌찌" 하고 운다 하여 '찌찐매미'이다. 물론 학명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매미의 울음소리에 따라 그렇게 불렀고, 아버지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지금도 이 지역에선 그렇게 부른다. 학명으로는 유지매미와 털매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맴맴, 하며 매미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울음소리로 우는 참매미와 쓰름매미(이 지녁에선 "새알 새알" 운다고 하여 새알매미라고 부름)나 울음소리가 가장 큰 말매미는 아직 때가 아니라 발견할 수 없다.

 

  
▲ 우화. 매미가 허물을 벗고 하늘로 날았다.
ⓒ 강기희

 

먹을 것이 없던 어린 시절엔 참매미를 잡아 구워 먹은 적도 있었다. 매미 중에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참매미. 참매미는 그 시절 요긴한 군것질 감이었다. 매미를 잡기 위해서는 매미채가 필요했다. 산촌마을에 매미채가 있을 리가 없으니 즉석에서 만들어야 했다.

 

"평생 우는 손으로 살지 않으려면 매미 놓아주어라"

 

매미채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무가지를 동그랗게 휘어 실로 고정 시킨 후 긴 장대에 묶으면 완성이다. 완성된 것은 배드민트 채 비슷하다. 그렇게 만든 매미채에다 주변에 널려 있는 거미줄을 칭칭 감으면 훌륭한 매미채가 만들어졌다.

 

매미 잡는 방법도 간단하다. 거미줄 끈끈이가 마르기 전에 울고 있는 매미 등에 툭, 대면 날개에 끈끈이가 붙어 도망치지 못했다. 

 

잡은 매미는 구워 먹거나 매미 다리에 실을 묶어 하늘로 날리기도 했다. 여자 아이들을 놀려 주려고 매미를 가방이나 옷 속으로 집어 넣기도 했다. 그러면 여자 아이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고, 잠시 후엔 그보다 더 큰 보복을 당해야 했다.

 

매미를 손에 말아쥐고 있으면 매미가 손금을 잡고 울기도 했다. 다가 올 암컷도 없는데도 매미는 울었다.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울었다.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 유홍준 시 '우는 손' 전문

 

평생 우는 손으로 살지 않으려면 매미를 손에서 놓아주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울어서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사랑을 찾지 못해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하기에 매미를 놓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매미의 사랑. 울어야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매미의 일생은 처연하다.
ⓒ 강기희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오늘도 운다

 

지금 가리왕산 자락의 숲이 뜨겁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인해 숲이 뜨거워진 것은 아니다. 숲이 뜨거운 이유는 매미들의 사랑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매미가 우는 이유를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 안도현 시 '매미' 전문

 

그랬다. 매미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울어야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이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울어야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수컷매미의 존재 확인은 본능적이며 천형과도 같다. 그래서 벙어리가 된 암컷을 위해 울어주는 수컷매미의 사랑은 눈물 겹다.

 

인간이라고 그러하지 않을까.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에 인간도 울면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그 울음을 닦아주는 상대를 만났을 때 둘은 비로소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리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을 때, 더 이상 울음소리도 나지 않을 때 인간은 긴 이별을 선택한다.

 

지금 가리왕산 자락에선 사랑과 이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루어지고, 한 번도 울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벙어리 매미가 낙엽처럼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 은밀한 사랑. 매미가 나무 가지에 앉아 사랑을 부르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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