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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의 雜說

강기희의 雜說

거미, 그 질긴 기다림에 손 들었다.
제목 거미, 그 질긴 기다림에 손 들었다.
작성자 강기희 (ip:)
  • 작성일 2008-09-05 23:30:29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47
  • 평점 0점
 
  
▲ "돌려라 돌려" 거미가 거미줄에 걸려든 벌이 도망가지 못하게 마구 돌리고 있다.
ⓒ 강기희
거미집

 

아름다운 가리왕산 자락이 훤히 보이는 창문 밖에 왕거미가 집을 지었습니다. 실을 뽑아 이리저리 오가며 며칠 걸려 지은 집입니다. 건축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척척 잘도 짓습니다. 다 짓고난 거미집은 예술작품보다 아름답습니다.

 

거미줄에 걸린 왕벌 걸리다

 

많은 거미줄이 모여 집이 되는 거미집. 그렇게 지어진 집은 강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습니다. 거미가 창문 밖에 집을 지은 이유는 다름 아닌 먹이를 쉽게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밤이면 환하게 불을 켜두는 방이라 날벌래들이 많이 날아 드는 길목인 곳입니다.

 

끈적이 역할을 하는 거미줄에 걸리면 누구든 살아남지 못합니다. 오래 전 매미를 잡을 때 거미줄을 이용해 잡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살아있는 거미줄에서 도망치기란 우물 속의 미꾸라지가 밖으로 나오는 것 같이 어려운 일입니다.

 

어제 아침 나절 거미줄에 벌 한마리가 걸려 들었습니다. 꿀벌인데요. 사람을 쏘는 땡삐나 바드레벌은 아닙니다. 왕벌이 거미줄에 걸리자 거미줄 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거미는 왕벌이 도망치지 않게 재빨리 집을 수리했습니다. 꼼짝없이 걸려든 벌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 보려 하지만 거미줄이 다리를 놓아 주지 않습니다.

 

집 수리를 끝낸 거미가 벌에게 다가옵니다. 위기를 느낀 벌의 날갯짓이 더욱 강해집니다. 거미는 그런 벌을 잠시 지켜보더니 앞 다리 두 개를 이용해 벌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미는 마치 서커스를 하듯 큰 벌을 마구 돌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의 다리는 거미줄에 더욱 감기고 날개를 퍼득일 시간도 없었습니다.

 

벌을 한참 돌리던 거미는 이제 완전한 먹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던지 멀찌감치 떨어지더니 자신의 거미줄에 기대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거미는 해먹에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 휴식. 거미는 휴식을 취하고 벌은 정신을 잃고 늘어졌다.
ⓒ 강기희
거미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신을 차린 벌이 다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방에까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거미는 발버둥치는 가민히 바라 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험상 저런 상태로는 벌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나 봅니다.

 

서두르지 않는 거미, 초초한 왕벌

 

거미는 지켜보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로 벌에 대해 무관심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거미가 먹이를 먹어 치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몇 시간 째 기다리고 있지만 관심도 없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날렵하게 도망치던 거미였지만 그날의 행동은 느리기만 합니다.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거미가 아는 것일까? 아마 그런 모양입니다. 몇 시간 동안 거미를 살펴본 결과 거미도 인간처럼 사물에 대한 판단이나 사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벌을 다루는 행동이 저리 담백할 수 있을까요.

 

어릴 적 스파이더맨 만화영화를 보면서 나도 거미인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나무 하나 제대로 오를 줄 모르는 주제라 거미인간이 되면 어떤 곳이라도 오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헛된 것을 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먹이만을 먹고 사는 거미의 일상은 하루 종일 집을 보수하거나 먹이가 걸려 들기를 기다리는 일이 전부입니다. 바쁠 일도 없고 서두를 일도 없는 일상입니다.

 

  
▲ 성공. 거미가 벌 한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 강기희
거미줄

 

페루에서는 닭을 잡아 먹는 거미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고, 영국에서는 애완견을 죽이는 거미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거미는 그렇게 위협적인 놈은 없습니다. 거미의 몸이 10센티가 넘어서면 그것도 인간에겐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사이 왕벌은 거미의 먹이가 되고

 

시골에 살면 거미와 자주 만납니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얼굴에 거미줄에 감기는 일도 흔한 일입니다. 집안에도 거미줄 투성입니다. 불빛을 보고 달려든 벌레들이 거미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다들 다른가 봅니다. 

 

창 밖의 거미는 벌이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야 바람을 쐬듯 슬금슬금 다녀갑니다. 여덟개의 다리 중 앞 다리로 벌을 툭툭 쳐 보더니 다시 줄을 타고 이동합니다. 참으로 인내심이 강한 거미입니다.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되어도 거미는 벌을 먹지 않습니다. 배가 불러 그런 것도 아닌 듯싶은데 먹이를 그냥 둡니다. 어둠이 깊어지자 날 벌레들이 방충망으로 날아 듭니다. 벌레가 날아들자 나방들이 신이 났습니다. 나방은 창문으로 날아든 벌레를 먹어 치우느라 큰 날개를 퍼득거립니다.

 

그러는 시간에도 거미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이 오기까지 대책없는 기다림이 이어졌습니다. 대단한 거미입니다. 나는 "내가 졌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미는 없는 창문 틀로 벌의 다리와 날개가 떨어져있습니다.

 

거미가 밤새 만찬을 즐긴 모양입니다. 벌은 끝내 거미의 먹이가 되었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나는 허탈했습니다. 수액을 뿌려 먹이를 먹는 거미의 거미의 기다림에 비해 인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 사투. 벌이 거미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 강기희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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