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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의 雜說

강기희의 雜說

하늘은 높고 어머이는 나물 삶고
제목 하늘은 높고 어머이는 나물 삶고
작성자 강기희 (ip:)
  • 작성일 2008-09-03 01:10:30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41
  • 평점 0점
 
  
▲ 가을날. 하늘색이 아름답다. 가지끝에 앉은 잠자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 강기희
가을

 

하늘이 푸르고 높습니다. 점점이 떠 있는 흰구름도 풍경 하나를 보태기에 충분한 가을날입니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면 땀이 배어나오다가도 그늘에 들어가면 그 땀이 재빨리 꼬리를 감추는 요즘입니다.

 

가을에 만나는 풍경은 다 아름답다

 

하늘색이 참으로 곱습니다. 바늘로 하늘을 '콕' 찌르면 청색 물감이 얼굴로 주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날이 연일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기에도 좋고 책을 읽기에도 좋고 밀린 여름 빨래를 하기에도 그만인 날입니다. 가능하다면 몸을 빨래줄에 걸어 두어 시간 정도 말리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가을의 대명사인 고추잠자리는 전기줄에 줄지어 앉아 졸거나 비행을 위해 잠시 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전기줄은 잠자리의 쉼터거나 새로운 비행을 준비하는 활주로입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았던 잠자리는 어느 순간 푸른 하늘을 날아 올랐다 돌아와서는 빈 자리에 앉습니다.

 

산길에 피어난 마타리꽃이 유난히 노랗게 느껴지는 오늘, 산촌마을도 분주합니다. 산촌마을을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이들은 벌초객들입니다. 주말을 맞아 산촌으로 찾아든 벌초객들은 각자의 조상 묘를 단장하느라 땀을 뻘뻘 흘립니다.

 

벌초하기 위해 돌리는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납니다. 벌초를 끝내면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도 모처럼 찾은 할아버지 묘에 어설픈 몸짓으로 절을 합니다. 벌초 후 둘러 앉아 먹는 음식도 가을맛이 나는 그런 하루입니다.

 

저도 이른 아침 할아버지 할머니 묘와 아버지 묘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집들처럼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고 날을 파랗게 벼린 낫으로 벌초를 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이지요. 쪼그려 앉아 풀을 베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왼손잡이라 오른손잡이 낫으로 벌초를 하려니 더 힘듭니다. 왼손잡이의 비극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이께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피마자 잎을 따고 있습니다. '아주까리'라고도 불리는 피마자는 어머이가 짓는 농사입니다. 이태 전 함께 살기 위해 아들 집으로 온 어머이는 피마자 열매 몇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끼를 치더니 올해는 밭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아 졌습니다.

 

  
▲ 피마자. 어머이가 키운 피마자. 아주까리라고도 한다.
ⓒ 강기희
피마자

  
▲ 피마자 열매. 열매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
ⓒ 강기희
피마자열매

 

올해 어머이가 한 농사는 풍년은 아니지만 작년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아들이 한 농사는 쫄딱 망했습니다. 다섯 통에 가까운 옥수수 씨를 놓았지만 먹을만 한 것은 열 통도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농사꾼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피마자 기름으로 멋부리는 멋쟁이 "쯧, 먹기도 힘든 것을..."

 

피마자 잎은 7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얼굴을 덮고 남을 정도로 큰 잎도 있습니다. 비가 올땐 우산 대용으로 해가 쨍 하고 날 땐 양산으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피마자를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로 10m 이상 키를 키운다(나무 수준)지만 우리나라에선 한해살이풀로 1~2m 정도 큽니다. 피마자는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서 함께 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마라 누구를 꾀자고 머리에 기름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 강원도아리랑 중에서

 

파마자 열매로는 기름을 짭니다. 기름은 공업용으로도 쓰이고 가정에서는 약용으로 쓰입니다. 예전엔 등잔불 기름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약용으로는 화상과 관절염, 변비 치료와 설사약 등으로 쓰이고, 무좀과 백선 등의 피부병을 치료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인답니다. 볶은 기름은 급성위장염이나 식중독 등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으며 피마자 기름은 초겨울이 되어야 만날 수 있습니다.

 

  
▲ 장화. 어머이가 신고 다니는 장화. 흙이 묻어있다.
ⓒ 강기희
장화
  
▲ 어머이. 피마자 잎을 따는 어머이.
ⓒ 강기희
피마자

 

피마자는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버릴 게 없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만병통치약 정도로 상용하던 피마자 기름. 그러나 우리의 추억 속엔 '피마자'하면 머리기름입니다. 지금처럼 머리에 바르는 기름이 흔하지 않던 시절 멋쟁이들은 먹기도 힘든 피마자기름이나 동백기름을 구해서 멋을 부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하니 강원도아리랑에 나오는 가사처럼 사람들은 피마자와 동백(생강나무) 열매가 열기는 것에 대해 시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하니 피마자는 비상 상비약이나 머리기름을 짜기 위해서라도 집안에 몇 포기씩은 꼭 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피마자 열매를 수확하는 철이 아닙니다. 어머이가 따는 것은 피마자 잎인데요. 나물로 먹기 위해 따는 것입니다.

 

다른 나물과 달리 피마자 잎은 날 것으로 먹을 수 없습니다. 피마자 잎을 살짝 삶아 말린 후 된장에 무쳐 먹거나 기름에 들들 볶아 먹는데 맛이 기막힙니다. 지역 마다 다르긴 하지만 예전엔 정월대보름에 먹는 나물 중에서 빠질 수 없는 나물이었습니다.

 

바람이 살살 불어주니 나물이 잘도 마릅니다. 어제 널었던 나물은 이미 말라 손질에 들어간 상태이기도 합니다. 잘 손질된 피마자 나물은 어머이의 용돈이 되어 줍니다. 닷새 마다 열리는 정선 장터에 가면 곤드레 나물과 피마자 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우리 어머니입니다. 정선 장터에서 피마자 나물과 피마자 기름을 파는 분도 어머이 뿐이지요.

 

어머이가 피마자 농사를 짓지만 아들은 언제나 찬밥입니다. 피마자 나물을 먹어 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이는 나물을 팔기만 하지 밥상에 올리지는 않습니다. 혹여 나물 부스러기라도 먹어 볼까 싶지만 그것 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먹어 볼 때가 있는데요. 귀한 손님이 왔을 때입니다. 우리집을 찾았다가 피마자 나물을 먹어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귀한 손님이라고 여겨도 될 정도입니다.

 

  
▲ "이것도 기술이여~" 피마자 잎을 삶는 어머이.
ⓒ 강기희
피마자

  
▲ "잘 말라야 할 텐데..." 마당 한 켠은 피마자 잎으로 가득차고.
ⓒ 강기희
피마자

 

"어머이, 맛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먹읍시다"

 

어머이가 아끼는 피마자 나물이 마당에서 잘 마르고 있습니다. 아들이 피마자 나물 쌈을 원없이 먹어 보는 게 소원인지는 어머이도 모를 겁니다. 시골에 사는 어머이들은 좋은 거 다 내다 팔고 정작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손질해 밥상 위에 올리는 것 아시죠? 우리 어머이도 그렇습니다.

 

"어머이, 좋은 것은 생산자가 먼저 먹어 보는 거여."

 

아들이 보다 못해 그렇게 지청구를 늘어 놓아도 어머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어머이는 더덕을 까서 장터에 팔기도 하고, 도라지를 까서 팔기도 합니다. 아들이 보기엔 껍질을 까는 품이 더덕이나 도라지보다 더 비싸 보이지만 어머이는 그 품을 계산에 넣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깐 더덕도 가장 나쁜 것 몇 개가 밥상 위에 오를 뿐입니다. 그나마 그것도 선심 쓰듯 올려 놓습니다. 요즘은 도라지를 까시는데 그것 역시 아직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찌개 하나 없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 봅니다.

 

오전 참엔 벌초를 끝내고 들어 오면서 시장을 봤습니다. 시장이라 해봤자 계란 한 판과 구운 김 두 톨에다 칼국수가 전부입니다. 칼국수는 어머이가 좋아하시는 것이라 산 것이지요. 칼국수를 보신 어머이, 당장 끓여 드시는데 따 놓은 호박 중에서 가장 볼품 없게 생긴 작은 호박을 썰어 넣습니다.

 

"이왕이면 잘 생긴 놈으로 하지…."

"좋은 호박은 썰어서 호박 말랭이 맹글어야지."

 

어머이의 말에 아들은 더이상 할 말을 잃고 맙니다. 누가 우리 어머이 좀 말려주심 안될까요? 좋은 것은 집에서 먼저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실 분 안계시나요? 생산자가 그 정도 권리는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어허, 어쩌다보니 어머이 흉을 보는 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이 흉을 보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팔고 찌그러기 정도를 집에서 먹는 어머이의 '고객 우선 법칙'을 칭찬 하려는 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햇볕이 좋습니다. 어머이가 널어 놓은 피마자 나물이 말라가고, 호박이 꾸득꾸득 말라가는 산촌의 마당엔 지금 가을색이 한창입니다.

 

  
▲ 피마자. 어머이가 삶아 널은 피마자 잎이 햇볕에 마르고 있다.
ⓒ 강기희
피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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