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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의 雜說

강기희의 雜說

배우였던 조카의 방랑벽은 언제 멈출까
제목 배우였던 조카의 방랑벽은 언제 멈출까
작성자 강기희 (ip:)
  • 작성일 2008-08-31 20:32:06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37
  • 평점 0점
 
  
▲ 여인 강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 여행 중에 만난 친구이다.
ⓒ 최일순
여행자
이태 전 가을 무렵 집을 떠난 조카. 이름은 최일순이다. 나이는 마흔이나 먹었고 한때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연극배우와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1987년부터 시작한 일이니 그간 출연했던 작품도 꽤 되었다.

 

배우였던 조카, 천상병 시인과 부자 인연 맺어

 

연극은 <여자부부> <곡마단이야기> <블랙박스> <천상시인의 노래> <거짓말> 등이고, 영화는 <파업전야> <태백산맥> <은행나무 침대> <어른들은 청어를 굽지 않는다> <이재수의 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이다. 간혹은 드라마에도 출연을 했으니 그 작품이 <옥이 이모> <서울야상곡> <동행> 등이다.

 

"<옥이 이모> 중에서 어디 있었냐?"

"극 중에서 풀빵을 굽던 탤런트 주현씨가 나중에 빵집을 하거든요. 거기에서 빵 배달하는 청년으로 출연했어요."

 

"<태백산맥>에서는?"

"거 왜 있잖아요. 빨치산… 아휴, 그거 찍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눈 내리는 설악산에서부터 남도의 갯벌까지 뛰는 게 일이었어요."

 

조카는 드라마 <옥이 이모>에서 '양군'으로 출연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한때 '양군'이기도 했다. 영화는 다들 시대를 반영한 작품에 출연했다. 선이 굵은 인상 탓일 게다. 조카의 출연 작품 중에서 <천상시인의 노래>가 눈에 띄었다. 조카와 사연이 있는 출연작품인 것이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조카가 양아버지로 삼은 분은 천상병 시인이었다. 오래 전 천상병 시인이 조카에게 "난 자식이 없다. 요놈아, 니가 내 아들해라"며 먼저 손 내밀었다. 그래서 시인 천상병과 조카는 부자지간이 되었다.

 

천상병 시인은 1967년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면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일로 천 시인은 후세를 갖지 못했고 삶 또한 망가져 폐인이 되다시피했다. 1970년 천 시인은 행려병자가 되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지인들은 당시 천 시인이 죽었다고 생각해 유고 시집 <새>를 출간하기도 했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고 천상병 시인의 시 '새' 전부

 

그 무렵 외롭지만 눈 맑은 시인과 조카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인사동 거리를 누볐다. 시대가 시인을 울적하게 했듯 조카도 시인을 만나면서 세상이 어떤 것인지 배워나갔다.

 

  
▲ 아마존강. 배를 타고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하루를 강에서 보낸다.
ⓒ 최일순
아마존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조카의 어릴 적 꿈은 비행사나 항해사였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 극 중 배역으로나마 비행사가 되고 항해사가 되고 싶어 배우가 되었다. 배우가 되는 길도 가시밭 길이었다.

 

항해사가 꿈이었던 조카, 결국 배낭 꾸려 길 떠나다 

 

배우가 되고자 갖은 고생을 하며 힘겨운 시간을 다 보낸 조카. 이젠 배우의 길을 진득하게 걷는가 싶었지만 언젠가부터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1995년의 일이고 첫 여행지는 캐나다의 록키산맥이었다. <태백산맥> 시사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고, 더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떠난 여행이었다.

 

그렇게 좁은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닌 넓은 대륙을 밟으며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땅으로 떠나길 여러 차례. 신들의 땅 인도에서는 인간의 행복은 물질이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베트남의 한 섬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말보다는 뜨거운 가슴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득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다시 배우의 길을 걸었다. 작품이 끝나면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잘 꾸며진 도시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더 마음에 끌렸다. 그러다보니 한 해의 대부분을 낯선 길에서 보냈다. 거듭되는 여행 속에서 조카는 '이제 진정으로 항해사가 되어 세계일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작심하고 떠난 여행. 중국과 티베트을 다녀왔다. 다음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행기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책이 <타시텔레>(창작마을 펴냄). 생각처럼 큰 돈이 되지 못했다.

 

2002년부터는 오지여행 인솔자로 나섰다. 강원도 오지 마을에서 태어난 조카가 사람들을 인솔하여 세계 여러나라의 오지마을 길잡이로 나섰다. 오지에서 오지로의 여행. 문명의 더깨가 덜 앉은 곳은 나라를 불문하고 그 삶이 비슷했다.

 

길 떠났다 2년 만에 돌아온 조카 "어린왕자가 되었네?"

 

2년 전 길을 떠났던 조카가 얼마 전 돌아왔다. 그리곤 여행기라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책 제목은 <아마존으로 가다>(금토 펴냄)이었다. 책에 다 나와 있으니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 흔적 조카가 펴낸 여행서 <아마존으로 가다> 표지
ⓒ 금토
최일순

집을 떠난 지 2년 만에 돌아온 조카는 중미와 남미,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단다. 그동안 뭘 먹고 살았냐고는 물었다. 조카가 '그 나라 밥 먹고 살았다'며 풀쩍 웃었다. 조카는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많이 키운 듯 생각과 말이 제법 깊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 배에는 나 말고 한 명의 여행객이 더 있다. 프랜치 가이아나에서 온 프랑스 청년이다. 그와 나는 교대로 뱃머리에 카메라를 들고 선다. 아까부터 그는 배를 따라오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마존 돌고래를 사진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민물 돌고래로 이곳에서만 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색의 민물 돌고래를 인도의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이미 많이 만났다. - 책 '아마존으로 가다' 본문 중에서

 

이국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도 그렇지만 조카의 글은 맛깔스럽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글이고, 질긴 외로움으로 써 내려간 글이라 그런지 여행자의 땀과 눈물이 문장 곳곳에 묻어났다. 책에는 홀로 먼 길을 걸어본 자만이 만날 수 있는 여행지에서의 사랑이야기와 낭만, 여인들의 유혹과 인디오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흔적, 그리고 조카가 품고 있는 고독한 일상이 글의 행간에 다 숨어 있다.

 

또한 그의 글은 배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라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쓴 원고 들이라 꾸밈이 없어 좋다. 여행 중이어서 원고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 오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여자가 내게 말을 건넨다.

 

"여긴 뭘 보러 왔니?"

"빠삐용이 유배됐던 섬을 보려고요."

"어머, 너도 빠삐용을 좋아하니?"

 

그녀는 빠삐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많이 유식하다. 방안에 쌓인 책들이 그것을 반영한다.

 

"우리는 모두 빠삐용을 좋아해."

 

잠시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본다. 의외로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있다.

 

"너도 나를 떠날 거지?"

 

난데없는 질문이 당혹스럽다.

 

"그래 너도 나를 떠날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을 못한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해 술을 다시 한 잔 따라 마시자 그런 나를 건너다보던 여인이 묻는다.

 

"저 하늘에 떠있는 숨은 달을 따서 내게 가져다 줄 수 있겠니?"

"혹 제가 시간이 되면요."

"정말?"

"예. 시간이 되면 따다 드릴게요!"

 

나를 바라보던 여자의 그렁한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린다.

- 최일순 책 '아마존으로 가다' 본문 중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다. 조카가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를 닮았던가. 내용이 <어린왕자>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그의 여행이 이렇다면 언젠가는 떼를 써서라도 따라가고 싶어졌다.

 

  
▲ 지구 최남단 우수아이아. 대륙 땅끝마을인 우수아이아 마을과 등대. 빙하지대가 있으며 여름임에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 최일순
우수아이아

오자마자 떠날 준비하는 조카에게 "배우 일은 그만 둔 거여?"

 

이번에 펴낸 책은 조카가 지난 2년 동안 여행한 것 중 남미 여러나라에 관한 기록이다. 걸음한 곳이 많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단다. 앞으로 중미와 아프리카 여행 기록을 두 권 더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이 되었다니 그 일정 또한 바쁘다. 

 

나는 겨울이면 추운 강원도 산간을 해메고 다녔다. 눈 쌓인 시골 도로를 언 발로 걸어다니며 진종일 술기운으로 몸을 뎁혔다. 언제나 가장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고향 땅 인근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지만 내 그리움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 '아마존으로 가다' 서문 중에서

 

조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정선에서도 오지마을. 어릴 적엔 내가 살았던 마을이고 고향이기도 한 그 마을은 영혼의 마을이다. 조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마주 보이는 잡초밭에서 내가 태어났다. 울진삼척 지구에 간첩이 들어 왔을 때 천자문을 배운 집이 지금 조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조카의 할머니가 나의 고모. 지역에서는 큰 무당이었던 고모의 피를 조카가 온전하게 받아 들인 듯 싶다. 

 

"아고, 일순이는 어째 할머니를 그리 닮았더냐."

 

우리 어머니의 말씀이다. 할머니의 고향인 정선의 오지마을에 터를 잡았지만 방랑벽을 이기지 못해 배낭을 꾸리는 배우 최일순. 조카는 여행을 떠날 때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팔거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냥 던져버린 후 떠나곤 했다. 다시 돌아왔을 땐 그의 집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조카가 여행을 떠나는 궁극적인 목적은 '버리기'였다. 모두 버린 후 결국 자신까지 버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했다. 버려야 할 것이 얼마나 더 있기에, 조카는 올 겨울이 되면 길을 또 떠난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행길. 돌아온 지 며칠 되었다고 그는 벌써 또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깊은 눈매로 세상을 사유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조카. 그런 조카의 떠남과 돌아옴이 언제나 그칠 지 지금으로서는 예측도 되지 않는다.

 

"배우 일은 그만두는 것이냐?"

"아뇨, 좀 더 세상을 배운 후에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연기가 더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말도 맞다. 연기라는 게 고단한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던가. 남의 삶을 연기하려면 체득한 재산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 멋진 배우가 되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면 굳이 말리지 않는다. 부디 몸 건강히 잘 다녀오길 빈다.

 

  
▲ 돌담. 잉카의 수도 꾸스코 돌담 "예술이다"
ⓒ 최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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